요즘 일본과의 관계가 재 조명되고 그와 관련된 여러 이슈들이 터져나오고 있던 와중에 즐겨 찾는 커뮤니티에서 어느 회원분이 추천한 글을 보고 바로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이북으로 나와 있기에 리디북스에서 구매하여 읽어봤습니다.
사실 토지로 대표되는 박경리 선생님의 글은 아마도 대학 시절 한번쯤 지나 가면서 읽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이번 글이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토지는 드라마도 안봤을 정도로 관심 밖이었고, 소설책으로도 그 방대한 양에 질려서 감히 시도 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만, 이 일본산고라는 책을 통해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에 대한 감탄이라고 해야 할지 놀라움이라고 해야 할 지 묘한 느낌을 책 중반부부터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 책을 접할 때만 해도 해방전 일본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저자가 일본에 대한 생각을 수필 형식으로 썼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저자가 가진 놀라울 정도로 깊은 일본 문화와 그들에 대한 지식과 이해에 대해 놀라게 됩니다. 수필류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덥볐다가 제대로 한대 맞은 느낌? 그 덕분에 그동안 얕은 지식으로 잠시나마 잘난 척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는 좋은 기회가 된 책입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본과의 충돌이 이 책을 통해서 이는 언젠가는 한번쯤 필연적으로 발생했을 사건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저도 그동안 일본 소설이나 일본의 자기 계발류의 책들을 즐겨 접하며 무의식으로 그들의 문화와 실력을 높이 평가하며 여과없이 받아들였던 것을 돌아보며 일본이란 나라가 행하는 것들이 그동안 우리나라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었으며 그에 대한 우리 자신의 깨우침이 없다면 언젠다 다시 반복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또한,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언급한 지구를 살아가는 인간들과 그들이 창조해낸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가지 이념이 어떻게 우리를 파괴해 나가고 있는 지에 대한 통찰은 이 책이 단순히 일본이란 대상을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 공존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방향까지도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선진 문화, 기술이라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가진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는 계기도 되었고, 이 책을 통해 비로서 박경리라는 작가를 접하게 던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 후반부에 나오는 인상 깊은 글을 옮겨보니 이는 일본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리들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이란 단어만 바꾸면 말이죠.
3부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신동아 1990.09)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자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책 마지막에 나오는 부분은 1990년도에 작가가 신동아에 기고한 글로써 마치 지금의 우리 상황을 예견이나 한듯이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나앉은 거지가 도신세 걱정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이 얘기는 일본의 경우일 수도, 우리의 경우일 수도 있다.
곰배상 :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상
도신세 : 우두머리의 처지
위에 나오는 이 두 단어는 네이버나 구글 검색으로 나오질 않아 책 주석을 그대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