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얻은게 많은 책입니다. 별 다섯개 드립니다.
리디 셀렉트를 통해서 읽었는데 요즘 구독형 독서 서비스에서 가볍게 선택한 책들 중에 의외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들이 있어서 구독 서비스 요금이 하나도 아깝지 않게 느껴집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비록 미국의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법체계가 의외로 편견과 오류가 많을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선이라는 믿음(또는 신념)으로 인해 더 나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실례와 데이터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한편, 그에 대한 저자의 대안도 설명해주는 데 그 대안이라는 것이 다소 파격적인 부분이 있어서 놀라게 됩니다. (절대 동의는 못하겠지만 꽤 납득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저 역시도 저자가 말하는 필터 버블에 걸려서 비슷한 관념의 책들을 추천 받게 되고 그에 대한 신념이 쌓여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으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는 데 설마 법학 이야기가 심리학과 행동과학을 만나 AI를 거쳐서 가상세계(메타버스)로 갈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범죄 케이스를 위주로 잘못된 판결에 대한 미국 사법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이라 생각했는 데 읽다 보니 심리학과도 연결되어 행동 경제학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인간이 가진 오류들이 우리가 그렇지 않을 거라 믿고 있는(싶은) 법조계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오랜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체득한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만드는 자료는 믿지 말자.”
너무 당연한 생각이긴 하지만 동료들이 만든 자료를 바탕으로 데이타를 가공하여 보고서를 만들다 보면 아무리 꼼꼼한 동료가 만든 자료일지라도 한번 쯤은 이로 인해 실수를 하게 됩니다. 화폐 단위를 바꾼다던지, 제품 하나의 데이타를 누락시키거나, 콤마를 잘 못 찍거나 등등 이런 오류가 평범한 자리라면 괜찮은 데 꽤 높은 분에게 보고하는 공식적인 석상에서 높은 분에게 발견되어 곤혹을 치룬 몇 번(한번이 아닌)의 경험을 하고 나니 누가 만들던지 간에 자신이 직접 확인을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조차도 설마 법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공정하고,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란 가정을 해왔는데 저자는 미국의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오류들의 사례를 들어 제가 가진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그동안은 예전보다는 쉽게 얻을 수 없었던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하게 되면서 이제는 이런 의외의 데이터들을 찾을 수 있게 된 세상에 우리가 살게 된 것이죠. (한국에서도 어디선가는 이러한 비슷한 데이터 를 통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리라고 보는 데 조만간 우리나라의 사례에 대한 책이나 기사를 접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동안은 앵커링 효과나 편향 효과 등과 같은 이론들은 경제 지식과 접목하여 주로 투자의 세계에서 관심을 가졌었는데 이 책을 통해 인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오류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생활과 시스템속에 녹아 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과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오류와 편견투성이인 인간에 대한 연구들의 데이터가 축적되고 연구되면서, 인간이 기대보다는 비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점점 증명되고 있고 이러한 비 이성적인 행동을 이해하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면 미래의 세상은 파멸보다는 공존하는 세상으로 살아 남게되지 않을 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다만,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한 가상세계와 같은 대안은 한편으로는 AI에 의한 인간성 상실을 가져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한편으로 갖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 다수 또는 공익이라는 신념이 어떻게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논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접하면서 다시한번 우리가 왜 이러한 책들을 통하여 공부해야 하는지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법조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잘못된 신념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 결과를 실제 정책과 결정에 반영하는 거짓말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우리 사회가 되길 기원해 봅니다.
개인 생활에서도 데이터(와 통계)의 유용성을 활용하여 하는 일과 투자에 반영한다면 제 인생도 조금은 이성적인 발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그렇게 두려워 하는 꼰대가 되지 않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은 책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문구들입니다.
인간 뇌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불공정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인간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비난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장 좋은 구실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휘어주지 않는 한 역사의 활궁은 정의를 향해 [저절로] 휘지 않는다.
선한 의도를 가진 선한 사람이 결과적으로 끔찍한 부정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단순히 스스로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보다 타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믿을 때, 우리는 부정직한 행동을 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그런 행동을 합리화하기가 한결 쉽기 때문에.